예린이의 다음 일기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찾는 하루
오늘 예린이는 학교에 가는 길에 갑자기 발걸음이 느려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 뿌듯했는데, 오늘은 그 선택들이 정말 맞는지 괜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괜히 나선 건 아닐까?’ ‘발표를 맡지 말 걸 그랬나?’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예린이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선택에는 늘 불안이 함께 따라온다는 것을.
교실에 들어서자 친구들은 어제 정한 프로젝트 주제로 각자 바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벌써 자료를 많이 찾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부모님 도움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예린이의 마음은 조금 작아졌다. 자신은 아직 정리된 것도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린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노트를 펼쳤다. 비교하는 순간, 자신이 흐려진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첫 수업은 국어였다. 오늘은 발표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은 발표를 잘하는 방법보다 ‘듣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발표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듣는 사람이 있어야 완성돼요.” 그 말은 예린이에게 깊이 남았다. 발표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조금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혼자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예린이는 발표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문장이 어색한 부분도 있었고, 설명이 부족한 곳도 눈에 띄었다. 순간 지우개로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예린이는 연필을 멈추고 잠깐 숨을 고른 뒤, 이렇게 적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문장은 주문처럼 예린이의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
과학 시간에는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배웠다. 긴장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예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자신의 상태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몸은 솔직해요. 하지만 방법을 알면 다시 안정될 수 있어요.” 예린이는 그 말을 마음속에 꼭 적어 두었다. 몸이 그렇다면, 마음도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예린이는 혼자 급식을 먹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오늘은 조용히 있고 싶었다. 숟가락을 움직이며 예린이는 생각했다. ‘지금 흔들리는 건, 내가 진지하다는 뜻일지도 몰라.’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간다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예린이는 스스로를 조금 이해해 주기로 했다.
오후에는 프로젝트 중간 점검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은 각자의 진행 상황을 간단히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다. 예린이는 심장이 다시 빨리 뛰는 걸 느꼈지만, 손을 들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피부가 보내는 신호에 대해 조사하고 있어요.” 말이 끝나자 교실은 조용했고, 곧 선생님이 말했다. “아주 좋은 시작이야.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더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 그 말은 예린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학교가 끝난 뒤, 예린이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놀이터 벤치에 잠시 앉았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예린이는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불안했던 순간들, 다시 마음을 추스른 순간들, 그리고 용기를 냈던 짧은 발표. 완벽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도망치지 않은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숙제를 마친 뒤, 예린이는 프로젝트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넘어갔고, 흥미로운 그림은 표시해 두었다. 모든 걸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오늘의 예린이는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지금은 배우는 중이니까, 서툴러도 괜찮다고.
저녁을 먹으며 예린이는 부모님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요즘 좀 불안해.” 부모님은 이유를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불안한 건, 네가 진지하다는 증거야.” 그 말에 예린이는 마음이 조금 풀렸다. 누군가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는 느낌은 큰 힘이 되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예린이는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은 마음 이야기를 꼭 적고 싶었다. “오늘 나는 흔들렸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고 했다.” 그 문장을 쓰고 나니, 하루가 비로소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예린이는 미래의 자신을 다시 떠올렸다. 중학교에서 더 큰 시험을 치르고, 고등학교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하고, 대학교에서 수많은 선택 앞에 서 있을 모습. 그 과정에서도 분명 오늘처럼 흔들릴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배운 것처럼,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피부과 의사가 되어 환자 앞에 섰을 때도, 아마 같은 마음일 것이다. 모든 걸 다 아는 의사는 아니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마주하는 의사.
오늘의 교훈은 분명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강한 게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강하다는 것. 예린이는 그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며 불을 끄고 누웠다. 오늘의 불안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었고, 그 과정은 분명 예린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일기 또한, 그렇게 성장의 증거로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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