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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 의사가 되기까지, 흔들림 속에서도 걷는 법

나랏돈으로 용돈을 만듭니다 2025. 12. 12. 19:36

예린이의 하루 일기 같은 동화

피부과 의사가 되기까지, 흔들림 속에서도 걷는 법

예린이는 요즘 가끔씩 초등학교 운동장을 떠올린다.
비 오는 날 흙냄새가 올라오던 그곳,
체육 시간마다 신발이 더러워질까 조심히 뛰던 자신,
그리고 종이 울리면 누구보다 먼저 교실로 돌아오던 아이.
그 아이는 언제나 조금 느렸지만,
대신 주변을 잘 보고 있었다.

오늘 진료가 끝난 후,
예린이는 진료실 의자에 잠시 앉아 있었다.
컴퓨터 화면은 꺼졌고,
방 안에는 형광등 소리만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 날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시간이 쌓일수록 익숙해질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예린이는 일부러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무뎌지지 않으려고,
당연해지지 않으려고.

오늘 만난 환자 중 한 명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피부 상태는 약으로 충분히 조절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말을 할 때마다 눈이 흔들렸다.
예린이는 설명을 하다 말고 질문을 바꿨다.
“요즘 잠은 잘 자요?”

그 질문에 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는
피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학업 부담, 인간관계,
자신에 대한 실망.

예린이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대학교 1학년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똑같이 불안했고,
똑같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시간.
그때의 예린이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 시간도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예린이는
그 질문에 조용히 답할 수 있었다.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아프지만 지나야 하는 시간이었다고.

진료가 끝나고
학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것 같아요.”
그 말 한마디에
예린이는 마음속으로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 말이
의사로서의 자신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예린이는 버스 창가에 앉아
불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중학생 시절,
시험을 망치고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자신이 겹쳐 보였다.
그때의 예린이는
울음을 참고 있었고,
지금의 예린이는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며
예린이는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처럼 긴장된 얼굴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일기장을 펼친 예린이는
오늘도 날짜를 적고
천천히 문장을 써 내려갔다.

‘오늘은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답을 주지 못해도
곁에 머무는 건 할 수 있었다.’

글을 다 쓰고 나서
예린이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멈춤의 시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습관이었다.
그때도 예린이는
하루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항상 한 번은 되돌아보았다.

예린이는 자신이
특별한 결단력이나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림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하고, 생각하고, 다시 걷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워 왔다.

그래서 지금의 예린이는
완벽하지 않은 날에도
자신을 쉽게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이 부족했다면
내일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수많은 하루를 통과하며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성공을 증명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이야기라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자기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하루를 살아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동화가 전하고 싶은 또 하나의 교훈은 이것이다.
흔들리는 사람만이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오늘을 대하는 태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린이는 오늘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도 또 다른 하루가
자신을 시험할지도 모르지만,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심스럽게 뛰던 그 아이처럼,
여전히 넘어지지 않기 위해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자기 길을 걷고 있으니까.